- 6월 15일, 서일대에서 한·중·일 ‘제1회 지석영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 개최…한의사로서의 지석영 생애와 종두법 역사 조명 - 한의사들, 의료적 성과 토대로 감염병 관리에 적극 대처한 역사적 사실 확인…코로나19 등 현대 감염병 관리 및 치료에 한의사 역할 확대 필요
▲‘제1회 지석영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
우두법을 도입한 지석영 선생의 한의사로서의 생애와 업적을 되돌아보고, 조선시대 한의사들이 어떻게 천연두를 관리해 왔는지를 조명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됐다.
특히 이날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는 의료적 성과를 토대로 감염병 관리에 적극 대처해 왔던 한의사들의 역사적 사실과 함께 코로나19 등 현대 감염병 관리 및 치료에 한의사의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한의사협회(회장 윤성찬)는 6월 15일(토) 오후 4시부터 서일대학교 호천관 7층 강당에서 ‘지석영의 삶과 종두법’을 주제로 한·중·일 연자가 참석하는 제1회 지석영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는 정유옹 대한한의사협회 수석부회장의 사회로 △한의사 지석영의 연대기(김남일 경희대 한의과대학 교수) △한국 종두법의 역사와 지석영(이태형 대한한의사협회 학술이사) △우두법의 전파와 그 확산(아오키 토시유키 일본 사가대학 교수) △종두법으로 살펴본 중국과 외국의 의학교류(장재립 중의사·한국한의약진흥원 정책본부 세계화센터 연구원) △신종 감염병 전주기 의학적 관리에서의 한의약의 역할(권선오 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등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김남일 경희대 한의과대학 교수는 “우두법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한 지석영 선생(1855~1935)은 일제가 조선을 점령한 이후로 한의사로만 활동했으며, 1876년 종두연구에 착수한 이래 1880년 일본 동경에서 종두묘의 제조 및 축장법을 실습하고 귀국 후 전주, 공주 등지에 우두국을 설립하여 우두법을 교육했다”고 소개하고 “일제 점령 후 1914년 의생규칙이 반포되자 의생으로 등록(면허 6호, 관보 460호)하고 1915년 전선의회(全鮮醫會)의 회장, 1924년에는 동서의학연구회(東西醫學硏究會)라는 한의사단체의 회장을 역임하면서 한의학 발전에 힘쓴 인물”이라고 한의사로서 지석영 선생의 생애를 설명했다.
이태형 대한한의사협회 학술이사는 우두법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두창(급성 발진성 전염병, 천연두)이라는 질환에 대처한 선조 한의사들의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형 이사는 “허준은 ‘언해두창집요’라는 전문 의서를 저술해 두창에 대한 적극적인 의료 개입과 민간에서의 적절한 처방을 도왔으며, 정약용은 ‘임증지남의안’과 ‘의종금감’ 중 종두 관련부분을 정리하여 본인의 홍역 및 두창 치료를 위한 한의서인 ‘마과회통’ 말미에 수록했다”고 말하고 “유의 이종인 또한 ‘시종통편’이라는 인두법 관련 서적을 저술하고 실제로 적극적인 인두법을 시행하였으며, 지석영 역시 본인이 저술한 ‘우두신설’을 통해 효과적인 우두법을 위해 아이가 약해 보일 경우 당귀와 녹용이 군약이 되는 ‘귀용군자탕(歸茸君子湯’을 미리 먹이고, 접종 후 제대로 창구가 합해지지 않거나 아물지 않을 때는 ‘생기산(生肌散)’이나 ‘금화산(金華散)’과 같은 한약 처방을 쓰도록 서술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태형 이사는 “이처럼 한의사들은 전염병 관리에 있어 열성적으로 대처했고 현대의 백신 접종에 해당하는 종두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으며, 국내에 우두법을 도입한 지석영 선생의 한의사로서의 정체성도 분명하다”고 언급하고 “이를 통해 볼 때, 코로나19와 같은 현대의 감염병 관리 및 치료에 있어서도 한의사들의 역할을 보다 확장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아오키 토시유키 교수는 우리나라보다 먼저 종두법을 습득해 시행하고 지석영 선생의 종두법 습득에 단초를 제공했던 일본 종두법의 역사와 전파 및 확산과정 등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괄목할만한 연구논문을 발표한 일본 의사학회의 대표적인 인물로, 이 날 ‘우두법의 전파와 그 확산’을 주제로 강연했다.
실례로 아오키 토시유키 교수는 지난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일본 문부과학성의 과학연구비를 지원받아 일본 전국으로 퍼진 우두접종법의 전파와 보급을 연구조사하여 천연두와의 투쟁시리즈를 출간한 바 있다.
아오키 토시유키 교수의 발표 내용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처음 네덜란드 상관장 또는 상관의가 일본 아동들을 대상으로 우두장(牛豆漿)을 접종했지만 실패를 거듭했으며 1849년에 비로소 우두가(牛痘痂·Cowpox scab)를 접종해 처음 성공했다.
규슈 지역을 중심으로 우두법 연구가 시작됐으며 1849년 사가번의 의사가 나가사키에서 최초로 종두를 성공시킨 후 사가번 지역 내에서 조직적으로 접종을 실시했다. 이후 나가사키 인근 오무라번에서 우두접종을 개시했으며 1861년 의사들이 종두를 하면서 의학교육을 실시하는 의학관의 창설을 청원해 설립됐다.
1849년 후쿠오카번 의사가 우두접종을 시작하고 1854년 고쿠라번에서는 고쿠라번 의사를 종두의로 임명하고 마을 의사에게 우두기술법을 배우게 하는 동시에 1858년에는 송아지에 우두를 이식하여 신선한 우두를 얻는 방법도 시행했다.
종두법은 이후 서일본 지역으로 확대돼 교토와 오사카 종두를 개시하고 분묘소를 설치했으며 중부 일본 지역을 거쳐 동일본 지역까지 확대 전파됐다.
또한 수많은 의사들이 종두소를 설립하고 서양의학강습소를 개설했으며 1877년 이들 의학소는 동경대학의학부가 된다. 이 시기부터 일본에서 청신한 우두묘 제조 방법이 사용됐다.
1877년 부산 일본거류지의 제생의원에서 우두종두를 실시했으며 이 때 지석영 선생이 우두법을 습득해 이후 종두 등 근대의학의 보급에 노력했다.
장재립 중의사·한국한의약진흥원 정책본부 세계화센터 연구원은 청나라 강희제가 인두 접종법을 발전시켜 국내외로 널리 보급하고, 19세기 서양의학의 전래와 함께 영국의 우두술이 다시 근대 중의학 발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해 소개했다.
끝으로 권선오 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감염병에 대한 한의약의 접근 원리는 병원체의 박멸이 아닌 인체가 병원체의 체내 침입에 대항하는 자생력을 지지하는 방법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하고 “병원체에 감염되었을 때 한의약에서는 부정거사(扶正祛邪; 질병에 대항하는 저항력의 근원인 정기를 북돋아 줌으로써 병을 치료하는 한의치료법) 치료법을 시행하는 만큼, 예방-급성기-회복기-후유증기로 이어지는 전주기 동안 병태생리적 증후가 매우 복잡다단한 코로나19와 같은 신변종 감염병 대응에 있어서 한의약이 제시하는 전일적(holistic) 관점의 접근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감염병 관리에 있어서 한의약의 역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은 “한의사로서의 지석영 선생의 생애와 우리나라 종두법의 역사를 토대로 지석영 선생의 우두법 도입이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고 일본과 중국에서 이루어진 종두법의 역사와 한의약의 활약을 고찰한다는 차원에서 이번 심포지엄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며 “특히 코로나19 당시 한의사들의 역할과 노력을 되돌아봄으로써 감염병의 예방과 치료에 있어 한의약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국제학술심포지엄은 한의약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위해 6월 15일과 16일 양일간 용마폭포공원 및 서일대학교(서울시 중랑구 소재) 일대에서 펼쳐지는 ‘제1회 지석영 건강축제’의 일환으로 마련됐으며, 국제학술심포지엄 이외에 한의약 건강강좌와 체험부스 운영, 기념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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